2018년 12월.

from 생존의증명 2018.12.17 08:07

아이앰히스레저, 데릭 머레이(2017) - 사실 이것을 되게 훌륭한 다큐멘터리라고 볼 수는 없다. 그 동안 히스 레저가 찍어 남겨놓은 수많은 영상들을 소스로 해서 만들어낸 것 뿐이지, 뭔가 특별한 관점을 보여주거나 인간 히스 레저에 대한 깊이 있는 무언가를 보려고 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히스 레저는 히스 레저. 그냥 그가 나온다는 자체만으로 집중하면서 볼 수 있다. 그가 되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강조하는 건 조금 비위에 거슬릴 수 있다. 다시 봐도 참 멋있게 생겼다. 아직 기사 윌리엄을 못 봤는데, 그거나 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루이 말(1957) - 나는 정말 이 영화가 드레스 투 킬 같은 영화인 줄로만 안 채로 수십년을 지내왔다. 맙소사. 이건 그런 영화가 아니잖아.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순간, 심장이 조여와서 잠시 나갔다 왔다. 어후, 어찌나 영화가 쫄깃하던지. 만들어진 시기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와 정말 이 시기에 이런 영화면 너무 선구적인 거 아닌가 싶은데. 루이 말 하면 데미지밖에 안 떠올랐는데,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감독이었는데, 그의 영화도 몇 편 더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범죄의 요소, 라스 폰 트리에(1984) - 어떻게 하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까를 늘 고민하는 것 같은 라스 폰 트리에의 첫 장편영화이다. 이 영화도 역시나 패기 넘치게 주황색으로 처바른 화면 덕택에 보는 내내 심기가 언짢고, 그 와중에도 화면을 이리저리 겹쳐놔서 어떤 장면에서는 정확히 지금 뭐가 나오고 있는건지도 파악이 안될 때가 있다. 내용은 뻔한 것이다. 범죄자로 동화된 채로 추적해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이론을 펼치던 사람이 너무 동화되어 모방범이 되었다는.. 굉장히 고전적인 이야기다. 도저히 존재 이유를 알 수 없이 너무 자주 벗는 여자의 등장 또한 아주 오래되고 못돼먹은 영화의 관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요즘처럼 장면도 불편하고 내용도 불편한 건 라스 폰 트리에 나름의 발전이었던 것이다. 그는 원래 내용적으로는 되게 비창조적인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죄 많은 소녀, 김의석(2018) -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그래, 나도 고등학교 1학년 때 그 애들 앞에서 신나를 마시고 목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꽂고 그들에게 쇳소리로 너희가 그토록 바라는 나의 죽음을 이뤄주겠다,라고 했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 때 너무 많은 꿈이 있었고, 내가 그 때 겪는 그 모든 고통은 예수가 겪었던 고통과 같은 것이라서 비로소 그 고통이 모두 끝나는 날 나는 내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나 가해자는 언제나 승리자이고, 피해자는 죽든 살든 보상을 받든 사과를 받든 끝까지 패배자다. 그것은 바뀌지 않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이다. 죽은 아이는 말이 없고, 죽었어야 했는데 살아버린 아이는 결국 스스로 이미 죽어버렸어야 했다고 인정하며 죽어버리고,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아이들 중 몇은 며칠 정도 상념에 잠길 가벼운 죄책감이나 갖고, 아니면 그 마저도 없이 누구도 그들을 용서한 적 없는데도 스스로가 먼저 용서하고, 죽은 아이가 본다면 말라버린 피가 다시 거꾸로 솟아버릴 것 같은 밝고 깨끗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가 자살이라니 얼마나 가여운가. 그들의 인생에 그의 자살은 아무런 흠집도 못 낼텐데 말이다. 이것이 한결같은 세상의 법칙이다. 전여빈이 나오는 영화를 몇 편이나 보았지만, 언론의 칭찬이 무색하게 매력을 전혀 찾지 못했다. 연기는 늘 어색한데, 특히 손발을 어디에 둬야할지조차 아직 모르는 것 같이 서투른 몸은 보기에 참 답답했다. 이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연기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손발쓰는 것에 어색함이 있다. 배우는 표정과 목소리로만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몸 전체가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보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다. 마스크가 정말 매력적이고 목소리 톤도 괜찮으니 몸쓰는 요령도 잘 파악해서 좋은 연기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행잉록에서의 소풍, 피터 위어(1975) - 친구와 얘기하다 우연히 이 영화 이야기가 나왔는데, 둘 다 이 영화를 보고 싶어했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크게 유명한 영화가 아닌데 그 친구가 이 영화를 알고 있는 게 굉장히 신기했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며 이 영화에 대한 환상을 계속 키워갔는데, 그게 실수였다. 크큭. 그냥 기대없이 봤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너무 큰 기대감을 갖고 봐서 영화가 무척 실망스러웠다. 되게 신비스럽고 막 미스테리하고 그런 줄 알았는데, 그냥 여자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 청춘 퀴어....라고 말하니까 이상하지만, 영화를 천상의 피조물과 비교하는 글을 종종 봤는데 천상의 피조물이 그렇게 별로였던가 싶고. 그냥 딱 70년대 컬트 영화 같은 느낌이 든다.

살아남은 아이, 신동석(2018) -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두 성인배우의 연기보다 아이 하나의 연기가 더 생생하고 와닿았다는 것이다. 쉽지 않았을 여러번의 감정 굴곡을 무사히 완주하는 이 아이가 부디 신체 멀쩡한 성인 연기자가 되어서(간혹 훌륭한 아역들이 피지컬적인 이유 때문에 좋은 역을 딸 수 없는 성인으로 자라는 걸 봐와서... 너무 안타까워서...) 좋은 역을 많이 맡게 되면 좋겠다. 이미 초반부터 어느 정도 아이가 고백할 반전에 대한 예상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반전이 드러난 후에도 여전히 관객이 이 아이에 대한 판단을 망설이게 되는 것은 그 동안 아이가 보여준 행동에 진심과 본성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초반의 몇몇 설정은 다르덴 형제의 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다. 솔직히. 그렇지만 감독이 설령 그 영화에서 많은 부분을 따왔다고 해도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다르덴 형제의 방식보다 몇 발 더 나간, 조금 더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는 후반부 때문에라도 나는 감독의 차용을 비난하지 않겠다.

에쿠우스, 시드니 루멧(1977) - 그때는 시험기간이었고, 나는 신들의 이름을 한글도 영어도 아닌 제 삼의 언어로 다시 외워야 했다. 나는 몇 달이나 영화 한 편을 보지 못해 힘이 들었고, 반인반수 신들의 이름을 찾다가 자연스럽게...에쿠우스를 찾게 되고.... 아닌가 이게 아니었나. 브리타니쿠스를 찾다가 에쿠우스를 찾은거였던가... 여튼 십 몇 년 전에 대학로를 걷다가 에쿠우스 연극 포스터를 보고 한눈에 반했었지만, 그 연극은 삼만원인가 그랬고, 나는 그 돈이 없었다. 그 후로도 나는 연극에 쓸 삼만원은 평생 벌지 못했고, 이제는 에쿠우스라는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감독이 시드니 루멧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 시드니 루멧은 언제나 좋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니까. 영화는 정말 좋았고, 아마 그것은 원작이 워낙 좋아서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나서 연극이 더 보고싶어졌다는 문제가....생겼지.... 카메라로 편집되지 않은 날것의 무대를 보고 싶다. 그리고 주인공 앨런 역의 배우는... 열일곱으로 나오는데.... 얼굴에 주름이 너무 많으셔서.... 서른 일곱 정도로 보인다.... 그 영화에서 온몸을 던지시고... 그 뒤로는 활동이 없으시다..

완벽한 타인, 이재규(2018) - 우리는 이미 이런 식의 영화들이 여러차례 망해온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난 이재규 감독이 좋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연말이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영화가 재미있고, 배우들이 다 연기를 잘해서 조금 어색할 수 있는 설정이나 대사들을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다들 베테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조진웅만 너무 성인군자처럼 나온다. 제한된 공간과 시간에서 벌어지는 소동이 연극같고 매력적이었다. 연극으로 만들어져도 재미있을 것 같다.

사티리콘, 페데리코 펠니리(1959) -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과제 때문에 이 영화를 봐야만했고.... 내가 아는 펠리니 감독은 이런 영화를 만들 사람이 아닌데 도대체 왜 이런 영화를 만든건가 막 마음이 힘들고.... 도무지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고, 과제에 1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시간이 아까웠고, 정말 감독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랑, 김지운(2018) - 강동원의 작품 선택 실패는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인랑은 절대로 못 만든 영화는 아니다. 그냥, 더 잘만들 수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하지 못한 영화인 것이다. 강동원과 한효주의 관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바람에 나머지 스토리들은 쫓기듯이 진행된다. 덕분에 정우성은 서사없는 텅 빈 인물이 되었고, 김무열은 그냥 명분없는 나쁜 놈이 되었고, 한예리는 까메오가 되었으며, 최민호는 그냥... 죽었다. 두 인물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해서, 둘의 감정선이 단단해진 것도 아니다. 그저, 투샷을 보여주는 것에 시간을 많이 썼을 뿐. 분량 배분에 완전히 실패한 것 같다.

피어 시티, 아벨 페라라(1984) - 정말 오랜만에 아벨 페라라 감독 영화를 보았다. 80년대 미국 영화를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한국에도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계층을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들이 있었듯이, 80년대 미국 영화는 뉴욕과 갱을 다룬 영화가 무지하게 많다. 세련됨, 우아함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런 영화를 보는 것은 항상 즐겁다. 뒷골목 스트립댄서들만 테러하는 남자가 등장하는데, 여자들에게 면도칼질을 잘하기 위해서 해부학을 공부하고 동양무술로 단련하는게 진짜 웃기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더 웃기다. 이런 영화를 보고 있으면 과거로 돌아간 것 같고, 기분이 애잔해지면서도 행복해진다.

펑꾸이에서 온 소년(1983) - 나는 허우샤오시엔이 정말 좋다. 그의 따뜻함. 순박함. 배우들의 철없이 우스꽝스러운 행동들. 바닷가, 담이 낮은 집들과 이웃끼리 다 아는 사이의 작디 작은 마을. 내가 생각하는 아시아 영화의 아름다운 부분이 담겨있다. 유럽이나 미국 영화는 이런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이런 영화를 보면, 따뜻한 물이 심장까지 차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덩치는 소년이 아니지만, 그가 회상하는 장면은 언제나 그가 소년이었을 때다. 그를 꾸중하고, 가르치고, 데리고다니던, 그에게는 커보였을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야구공에 맞아 백치가 되었을 때, 그 역시 그쯤에서 정서가 멈춰버렸다. 큰 도시로 나와 겪는 큰 세상에서 제법 잘해나가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소년이 있다. 아버지의 죽음과 짝사랑의 태풍이 지나고 나서, 비로소 어른이 되려는 펑꾸이의 소년. 정말 따뜻한 기분이었다. 어쩜 이렇게 담담하게 별 거 아닌 것 같이 찍어서는 보는 사람에게 이런 기분을 줄 수 있는지. 사랑합니다. 감독님.

콰이어트 플레이스, 존 크라신스키(2018) - 둘이 같이 나오는 거, 심지어 부부로 나오는 거 꼴보기 싫어서 안 보고 있었는데 흥. 에밀리 블런트 부럽다. 영화는 되게 스릴있고, 아이디어도 좋지만, 앞이 안 보이고 소리로만 먹잇감을 찾는다는 괴물이 계단을 차분하게 잘도 내려오시더라. 어디 한 군데 부딪히지도 않고 말이지. 그리고 소리로 공격할 수 있다는 괴물의 약점도 너무 단순하고, 날지도 못하고, 개체수도 되게 많은 것같지 않는데 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는 설정은 좀... 무리수지. 그리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 아빠는 너희를 사랑해, 하는 장면은 정말... 차마 눈뜨고 보기에는 너무 오글거려서 눈을 돌리고 말았다. 이런 식의 멋있는 척은 좀... 아무리 존 크라신스키지만.... 참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맷 데이먼이었다면 참았을지도. ㅋㅋㅋ

학살의 천사, 루이스 부뉴엘(1962) - 이렇게 시간이 있을 때 아니면 절대 볼 수 없는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를 보았다. 후후후. 누가 댓글에다 감독더러 미쳤다고 써놨던데 그 말이 딱 맞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방 밖을 못 나가는 부르주아들이라니. 그런데 내 기대보다는 사람들이 끝까지 너무 고상해서 좀 아쉬웠네. 그렇게 오랫동안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면 좀 더 막장까지 갔었어야지. 막장까지 가기 직전에 풀려나와서 너무 아쉬웠는데, 교회에 다시 갇혔으니. ㅋㅋㅋㅋ 이번엔 수많은 양떼가 들어가셨으니 그 양들 다 잡아먹고 사람들끼리도 다 잡아먹어버렸으면.

유리고코로, 쿠마자와 나오토(2017) - 연말 영화관람의 고른 국가 배분과 마츠야마 켄이치를 보겠다는 목적으로 고른 영화. 뭐 그냥 일본 영화인데, 마츠야마 켄이치가 오랜만에 잘생기게 나와서 흐뭇했다. 그래 너의 갈길은 멀어. 앞으로 십 년 정도는 계속 미남으로 활동해주길 바란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팀 버튼(2016) - 그래, 또 연말에는 팀 버튼 영화 하나 정도는 봐줘야 연말이지. 난 에바 그린의 영어 억양이 정말 듣기 좋다. 그 억양에 홀려서 페니 드레드풀도 다 봤지. 영화는 재미있고, 아기들이 올망졸망 나와서 투닥투닥 악당을 물리치는 게 어찌나 귀여운지. 하지만 사실 난 남자아이가 그들과 함께 떠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만난 다른 세상에서 머무르는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회피같고.

2019년 10월.

from 생존의증명 2018.10.30 09:14

협상, 이종석(2018) - 나는 가끔 말도 안되는 영화에 시간을 헛되이 보낼 때가 있다. 나는 영화를 정말 좋아하고, 사실 특히 시네필들이 좋아할만한 목록에 오를 법한 영화들을 나도 좋아하고, 또 보고싶어 한다. 그런데 영화사는 내 나이보다 훨씬 오래되었기 때문에 매일 몇 편씩 좋은 영화만 선별해서 본다고 해도 내가 죽기 전에 좋은 영화들을 다 못 보고 죽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초조하고 시간만 나면 영화를 찾아서 봐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정말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시간 낭비일 게 너무 뻔한 영화를 일부러 굳이 찾아서 볼 때가 있다. 예를 들면 협상 같은... 이게 다 현빈 때문이다. 나는 현빈을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데, 이상하게 그 배우는 너무 불쌍하게 생겼고, 자꾸만 영화가 망하고, 그래서 자꾸만 더 불쌍하게 생겨지고, 그래서 자꾸 그 사람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게 된다. 그래봤자 나보다 돈도 잘 벌고 예쁜 여자랑 잘 사귀면서 행복하게 사는 연예인인데도 말이다. 정말 사람 심리는 이해할 수가 없다. 여튼 영화는 예상대로 엉망이었고, 나는 이런 식으로 현빈이 어떻게든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빈은 분명 나쁘지 않은 연기력을 가진 배우지만, 악역이나 양아치나 뭐 그런 류의 역할을 하기에는 연기에 너무 선한 본성이 많이 묻어나는 배우다. 언젠가 그도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게 되겠지만, 아직은 그는 너무 선하다.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리고 손예진은 그 머리 별로였고, 머리만큼 다른 것도 별로였다. 감독은 이제 이런 거 찍으려면 더 이상 영화 찍지 마라.

너의 결혼식, 이석근 (2018) - 박보영이야말로 진정한 러블리지. 어디에서 무얼 해도 너무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자기 전에 머리 식히려고 봤는데, 의외로 되게 재미있게 봤다. 역시 팔할은 박보영의 사랑스러움이지. 잘 만든 베스트극장 같았다. 베스트극장을 내가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갑자기 옛 생각에 심장이 아파오네. 모든 영화가 심오하고 지적일 필요가 어디있는가. 이렇게 따숩고 어여쁜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작은 영화들도 충분히 가치있다. 너무 오글거리지도 너무 신파도 아니다. 모든 것이 적당하여 좋았다.

풀 메탈 자켓, 스탠리 큐브릭(1987) - 내가 언제나 전쟁 영화를 보는 것을 꺼려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고, 전쟁이 있는 지역에 살아 본 적도 없고, 그런 내가 감히 전쟁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어서다. 뉴스에서는 여전히 전쟁과 테러에 대한 기사가 들린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 지역적으로도 그렇고 심적으로도 그렇다. 베트남전, 한국전, 중동의 내전, 나는 이것들이 갖는 의미는 커녕 실상도 파악하지 못하겠다. 나도, 전쟁이 말살시키는 인간성과 파괴해버린 터전에 대해 그럴 듯하게 여기저기서 본 대로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정말 모르겠고 모르는 것이 부끄러워 말하지 못하겠다. 전쟁 때문에 미쳐버린 인간들을, 그래 영화에서는 수도 없이 봐왔다. 그런데, 정말 어떨지 모르겠다. 내가 조금도 모르겠는 것에 대해서 '정말 실제같다'라든가 '정말 현실감있다'같은 말은 못할 것 같다.

사일런스, 마틴 스콜세지(2016) - 어디선가 엔도 슈사쿠에 대해서 극찬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단 하나 그것 때문이었다. 서양 감독이 찍는 아시아 영화에 대한 기대감, 그런 건 나에게 눈꼽만큼도 없다. 우리가 노예 혁명에 대해, 트로이 전쟁과 율리시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웃음거리밖에 안되는 것과 같다. 당연히 예상했던 결과지만 영화는 깊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 이후에 엔도 슈사쿠의 원작을 읽었을 때도 누군가의 극찬과는 다르게 그저 그런 소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의 글이 그렇게 훌륭한 것이라면, 번역가의 목을 쳐야 할 지경이다.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역사적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것이지, 그 이후에 소설화된 혹은 영화화된 내용이 더 놀라울 것은 없었다. 그저 목판을 밟기만 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데도 그 쉬운 일을 하지 못해 잔인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은 실존 인물들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신념이 대단한 것이지, 그런 그들을 구하기 위해 신념을 꺾은 종교인 캐릭터는 사실 너무 예상 가능한 것이고 전형적인 것이므로 매력적이지 않다. 그와중에 마지막까지 사실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는 그런 사족 따위.

바칼로레아, 크리스티안 문주(2016) - 음. 이걸 뭐라고 해야하지.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다 좋았다. 사실 영화를 보고 시간이 좀 많이 지난 뒤라서 그때의 감흥이 많이 사라졌는데, 유리창이 깨지는 시퀀스부터 이 영화는 보통이 아니겠구나 하는 마음이 이미 들게 된다. 사실 그 전의 감독의 영화들을 그렇게 좋게 보진 않았다. 어느 정도의 거품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칸의 예지력이 이 정도였던가 싶었다. 인물 간의 갈등 구조가 굉장히 탄탄하고 복잡하다. 누구 하나 허투루 존재하지 않고, 모든 인물들이 촘촘히 얽혀있다. 묘사가 굉장히 사실적이고 서늘하다. 지난번 러시아 영화를 볼 때도 느꼈는데, 이 영화의 현실도 한국과 굉장히 흡사하고 그래서 그런지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왜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사회주의 국가의 현실과 그토록 가까운 것인가.

위선적 영웅, 자크 오디아르(1996) - 이 영화 웃긴다. 한 남자의 가짜 인생에 대한 내용인데, 그가 가짜 신분을 드러낼 때마다 보이는 주변 인물의 반응에 헛웃음이 난다. 그걸 되게 태연하게 연기하고 있는 남자도 웃기고, 간당간당하게 위태로운 순간들을 모면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결말은 되게 코엔형제스럽게 A의 죄를 지은 이가 B의 죄로 처벌받는다. 자막 올라갈 때 그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회상하는 사람들의 대사도 되게 웃긴다.

그림자 군단, 장 피에르 멜빌(1969) - 멜빌 영화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의 영화는 나에게 늘 되게 멋있고, 멋지고, 멋있고... 아무튼 멋지다. 주인공들은 늘 중절모에 수트차림이고, 웃거나 울지 않는다. 그저 맡은 일을 할 뿐이다. 고독하고 그러나 품위를 잃지 않는다. 알랭 들롱이 나온 영화를 봤을 때는 그의 외모 때문인가 했는데, 리노 벤추라를 데리고도 그렇게 찍는 걸 보면, 그냥 이 감독은 그런 감독인 것이다. 시몬느 시뇨레는 정말 예쁘지도 않은 여자가 왜 그렇게 아름다운 것인가. 레지스탕트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우아하게 한다.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거나 고문하는 장면조차도. 군더더기가 없고 묵묵하다. 그렇다고 한국의 누구처럼 겉멋만 들어서 내용은 개나 갖다 줘버린 것도 아니다. 그래, 폼을 잡으려면 이 정도는 해놓고 폼을 잡아야지.

여자들, 이상덕(2017) - 이런 식의 영화는 이제 그만 찍자.

테일즈 오브 테일즈, 마테오 가로네(2015) - 망할. 뱅상 카셀 때문에 봤잖아. 진짜. 아무 영화나 막 나오지 말라고. 도대체 이런 영화에는 왜 나온거냐. 영화가 개차반 쓰레기는 아닌데, 왜 이런 데다가 이 애꿎은 돈을 처발랐는지 모르겠는 영화다. 잔혹 동화 같은 느낌인데.... 그냥 그렇다.

2018년 9월.

from 생존의증명 2018.09.13 04:29

라이프, 다니엘 에스피노사(2017) - 처음부터 끝까지 기시감으로 가득찬 영화. 감독은 그래비티를 보면서, 그래피티에 에일리언을 접목시킨다면? 오 기발한데, 하고 생각했겠지만, 그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지 못한 채로 그냥 두 장르를 합친 것으로 끝인 영화였다. 조쉬 하트넷에 라이언 레이놀즈까지 나왔는데... 심지어 라이언 레이놀즈는 전반부에 사라져버리고... 아쉬웠다. 여러모로.

그린룸, 제레미 솔니에(2016) - 연말에 수많은 잡지에서 발표하는 그 해의 영화 베스트 리스트를 믿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첫 영화였다. 이게 뭔가 도대체. 재미도 없고, 스릴도 없고. 그냥 좀 잔인할 뿐. 이게 왜 베스트 리스트에 있는 거야. 필진들 멱살 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유전, 아리 에스터(2017) - 그린룸을 보고 나서 잘 만든 공포 영화에 대한 갈증이 너무 커서 이 영화까지 보았는데, 괜찮았다. 오컬트 장르가 잘못 찍으면 굉장히 유치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고 점점 조여오는 분위기도 좋았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는 딸 역할로 나온 배우의 기이한 외모가 한몫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배우가 앞으로 뭔가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느냐 하는 부분에서는 회의적일 정도로 이런 장르에 특화된 외모다. 소문처럼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건 아닌데, 보고 나면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올 더 머니, 리들리 스콧(2017) - 이게 실화라니. 세상에 이런 개차반같은 재벌이 아니 인간이 실존한다니 놀랍다. 영화는 재벌 3세의 납치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스릴러 장르라고 보기엔 느슨하고, 사회 드라마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대사들도 시니컬하고. 영화가 매력적인 지점은 사실 팩트만 놓고 봤을 때는 쓰레기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을 품격있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배우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기도 했고, 영화가 애초에 그를 악인으로 묘사할 의도가 없었던 것 같다.

붉은 사막,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1964) - 영화의 내용이나 인물의 상황, 감정에 공감하기에는 영화가 너무 불친절하다. 여배우의 연기도 굉장히.... 어색하고.... 그러나 영화가 갖고자 했던 분위기는 장면에서 완벽하게 이뤄낸다. 세트가 아닌 실외의 풍경과 건물을 담은 장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어디서 이런 데를 다 섭외했지 싶을 정도로 완벽하다. 감독은 영화 사상 최고의 비주얼리스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에드워드 양(1991) - 드디어. 드디어. 보았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를 정말 좋아하지만, 아직 이 영화를 못 봐서 내심 떳떳하게 팬이라고 말하기가 좀 망설여졌는데 이제 보았으니 당당하게 감독의 팬이라고 말해야겠다. 하나 그리고 둘에서도 느꼈던 감독의 거대한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이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의 영화는 종종 대만의 현대사를 표현한 웅장한 벽화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 영화도 그런 느낌이다. 영화는 한 소년이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결말까지 가는 내용인데, 이 소년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소년을 둘러싼 가정, 학교, 더 나가 그 사회의 모습과 상황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그 결말까지 흘러가면서, 넌지시 우리에게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그를 이렇게 이끈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의 영화가 많이 없는 게 이토록 아쉽다.

제너럴, 버스터 키튼(1926) - 버스터 키튼의 블럭버스터다. 다리도 막 폭파되고 돈도 많이 쓴 것 같다. 버스터 키튼의 영화는 언제나 좋은데 특히 주인공인 감독 자신이 짠한 몸과 얼굴로 뭔가 짠한 상황을 계속 고군분투하면서 헤쳐나가는 게 보는 내내 엄마 미소를 짓게 만든다. 왜냐면 언제나 결국엔 행복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수에 가득찬 얼굴이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영화를 만들어서 그가 좋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액션배우이기도 하다. 멋있다.

2018년 8월.

from 생존의증명 2018.08.05 07:44

이름 없는 새, 시라이시 카즈야(2017)  - 요즘 사정상 불어권 영상만 보다보니 지쳐서 오랜만에 아오이 유우가 나오는 영화를 보았다. 새같이 아름다운 아오이 유우가 이런 쓰레기 같은 영화를 찍어서 속상하네. 별 거지 같은 남자를 마지막에 '내 인생의 사랑'이라고 지칭하는 걸 보며 아니야, 그러는 거 아니야, 하고 감독을 타이르고 싶었다.

브루클린, 존 크로울리(2016)  - 시얼샤 로넌을 워낙 안 좋아해서 이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웬만하면 보지 않는데, 영화가 잘 빠졌다는 소문을 많이 들어서... 역시 영화는 매우 좋았고. 심지어 내가 정말 안 좋아하는 배우 두 명, 시얼샤 로넌과 아무개 글리슨이 나오는데도 영화를 보는데 별로 장애가 없었다. 영화는 무척 우아하고 깔끔하고,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이런 표현은 진짜 우습지만) 꼿꼿하게 직립해있는 느낌이다. 언니와의 서신 교환 부분이나 스토리도 너무 아름다웠고, 모든 것이 과하지 않았고 딱 좋았다. 특히 백미는 '잊고 있었네요. 여기가 얼마나 좁은 곳인지'라고 하는 부분. 선언처럼 느껴졌다.

셜록 주니어, 버스터 키튼(1924) - 오랜만에 버스터 키튼 영화도 하나 보았다. 그가 그렇게 작은 줄은 여태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가 꽤 작은 키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그 우수에 젖은 표정이 혹시 어떤 열등감이랄까 이런 것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여기 나오는 액션(!) 장면을 모두 직접 소화했다고 하는데, 꽤 난이도가 높다.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에 대해 큰 애정과 실험정신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역시 멋진 사람이다.

로건 럭키, 스티븐 소더버그(2017) - 스티븐 소더버그는 왜 채닝 테이텀을 좋아하는 것일까... 자꾸 같이 찍어... 난 싫어.. 난 스티븐 소더버그의 똑똑한 영화를 보고 싶단 말이다. 그와중에 아담 드라이버는 너무 매력있지. 아담 드라이버 앞에서는 백치미고 지성미고 다 필요없지. 영화는 나름 쫄깃하게 재미있었다. 크게 뒤집는 한방의 반전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쫀쫀한 영화. 그리고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를 못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랑과 죽음, 우디 앨런(1975) - 이 영화를 내가 분명 이미 옛날에 본 것 같다. 베르히만의 전매특허인 죽음씨가 나오는 게 되게 인상적이었는데 분명. 그런데 죽음이 등장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서 그냥 다시 봤다. 보고 나서 느낀 것은 왠지 한 몇 년 뒤에 이 영화 기억 못해서 또 볼 것 같다는 것.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가소롭고 픽픽 새는 웃음이 나오는 우디 앨런의 유머를 좋아한다. 우디 앨런의 사생활이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왠지 그의 영화를 보며 웃는다는 게 좀 찜찜하기는 한데, 이 사람의 터무니없는 대사를 보면 안 웃을 수가 없단 말이야.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이광국(2017)  - 홍상수 감독과 함께 일했던 스텝들은 뭔가 늘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홍상수 영화의 겉만 따서 뭔가 생활밀착형 스토리를 가지고, 약간 찌질하고 어딘가 부족한 그런 인간군상을 영화 안에다가 넣어두면 홍상수 영화와 비슷해지는 시점이 올 거라고 믿는 그런 나쁜 습관 같은 것. 그들에게는 결정적으로 홍상수가 가진 재능이 없다. 그것이 그들이 홍상수가 되지 못하는 이유다. 일단 홍상수가 그렇게 사골처럼 우려먹는 스토리의 구조적인 미학, 그리고 유머. 홍상수 바로 옆에서 그렇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을거면서, 누구도 홍상수가 만드는 이야기같은 구조를 짜내지 못한다. 유머는 또 어떻고. 홍상수 영화에서 유머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데. 이 영화는 너무 지나치게 소소하고, 특히 이진욱이 연기한 인물의 고민과 현실은 분명 너무도 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볍게 느껴진다. 그가 겪는 수모와 불합리함이 그에게 큰 타격을 못 주고, 그의 삶에 그저 스쳐가는 훈풍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배우의 잘못도 있는 것 같다.

120bpm, 로빈 캉필로(2017) - 내가 느끼는 프랑스인들의 특성이 많이 담겨있어서 볼 때 좀 피곤했다. 말이 많고, 늘 싸우고, 시끄럽고, 불만도 많고, 과장된 사람들. 영화의 절반 이상이 에이즈 투쟁 단체인 악트업의 토론 장면인데, 정말 너무 시끄럽고, 피곤하고, 관용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이 정말 레알 프랑스다. 서로 자기 말은 그렇게 많이 하면서 남의 말은 안 들어주니까, 결국엔 대화로 해결하지 못하고 늘 데모다. 다행히 배우들의 발음이 매우 정확해서 대사를 알아듣는 비율이 꽤 높았다. 하지만 이건 전혀 영화적인 장점이 아니잖아... 그렇지만 난 이제 더 이상 프랑스 영화는 즐기면서 볼 수가 없는 걸. 오로지 대사만 듣는다고..

독전, 이해영(2018) - 그렇게 괜찮다고, 그렇게 재밌다고 했는데 그렇게 괜찮거나 재밌지 않았다... 스토리가 아예 없다고 봐야하는 정도라서 빈껍데기 같았다. 류준열과 더불어 극의 축을 이끄는 조진웅은 완전한 무미였고, 이 영화로 빵 뜬 진서연도 그다지.... 오히려 차분한 류준열의 연기와 김주혁의 연기가 가장 눈에 띄었다. 김주혁은 정말 계속 진보하는 배우였는데, 안타깝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아마 그 비극적인 사고가 아니었다면 그의 재능은 앞으로 더 만개했을 것이다. 영화의 공간 미장센이나 음악이 굉장히 좋은데, 이 영화에는 좀 넘치는 퀄리티였던 것 같다.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2018) -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다. 사계절을 공들여 찍은 감독의 정성이 느껴졌고, 뭔가 큰 거 한방 없이도 단단하고 야무지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리나 먹방을 기대한다면 분명 실패할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에 흥미가 전혀 없던 나에게는 원작에 비해 그런 부분이 줄고 스토리에 더 힘을 기울였다는 게 좋았다. 김태리는 법으로 보호해줘야할 것만 같은 천연기념물적인 매력이 영화에서 뿜어져나오고, 이런 영화에서의 문소리를 볼 때마다 왜 드라마에서는 늘 이렇게 빼어난 연기와 매력을 제대로 못 살리는지 의문이 든다. 주인공에게 부담스럽게 다가가지 않고 넓은 터를 내어주고 품어주는 재하같은 남자는 현실엔 없으니까 그 부분은 좀 판타지지만 그래도 매력이 넘치니까 넘어가주자. 마지막에 주인공이 뭔가 삶의 지혜를 얻거나 깨달음이 왔다고 장황한 나레이션을 늘어놓거나 거창한 행동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서 그것도 좋았다.

저스티스 리그, 잭 스나이더(2017) - 음. 일단 벤 애플렉의 배트맨은 도무지 적응도 용납도 안되고, 영원히 안 될 것 같다. 원더우먼과 슈퍼맨이 그렇게 강하신 분들인지 몰랐는데 알게 되어 영광이고요, 특히 나머지가 다 달라붙어도 해결못하던 걸 슈퍼맨님께서 오시니 한번에 해결되어서 아 슈퍼맨이 히어로 중 짱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의 병맛을 플래쉬맨 혼자 담당해서 버거워보였고, 모인 히어로들이 그다지 매력적이지가 않아서 모아놓았을 때 딱히 시너지가 느껴진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 잭 스나이더 참 좋아했었는데 나는...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라이언 존슨(2017) - 이번에 보면서 또 느꼈는데, 그때 한 솔로가 살고 레아 공주가 죽었어햐 했다. 난 레아 공주 따위는 평생 더 안봐도 된다고. 나는 한 솔로가 보고 싶다고. 그리고 한 솔로에 이어 루크 스카이워커도 비장하게 퇴장하셨고, 이제 정말 스타워즈 오리지널의 문을 닫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아서 뭔가...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들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나는 아담 드라이버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이끌게 될 악의 무리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다. 그리고 온갖 능력를 다 가진 사기캐릭터 여주인공 레이에 비해서,,,, 아시아인이 처음으로 큰 비중을 가진 역할로 등장했는데, 미국에 널린 게 아시아 미녀일텐데요..... 그냥 그물로 낚아도 수천명은 될 것 같은 아시아 미녀들을 다 제치고.... 음....... 여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전략인가요..... 애초에 이 캐릭터를 왜 만든건지.... 온갖 인종을 다 포용하겠다는 정신은 좋지만.... 극에 잡초같은 이런 썩은 러브라인 따위는 넣지도 마란 말이야....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로제 바딤(1956) - 와우. 브리짓 바르도의 국어책 연기. 가슴을 지나치게 내밀고 걷는 것 외엔 모든 게 엉성한... 허리 너무 꺾어서 걸어다니는 통에 저러다 허리 부러질까 조마조마할 지경이네. 마지막에 춤추는 것도 엄청 섹시해야 되는데 목각인형처럼 삐걱대는 게 이상해... 이 영화는 왜 유명한 것일까. 브리짓 바르도만의 잘못은 아니다. 영화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엉성하기 그지 없다. 리듬감이 엉망진창이고, 둘째 며느리가 장남이랑 불륜을 저질렀는데, 며느리만 꺼지라고 말하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쯔쯔 이 시절엔 아무리 프랑스라고 해도 저 따위였구만 싶었다.

신과 함께, 김용화(2017) - 영화에 대해 말할 가치는 0인 것으로 판단되므로 딱히 할 얘기는 없고. 이정재는 무슨 헤어스타일을 붙여놔도 잘생겼고, 김향기는 정말 귀엽다...는 두 가지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다.

파리 텍사스, 빔 벤더스(1987)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하던 빔 벤더스가 있었다. 요즘엔 다큐멘터리에 힘을 더 쏟기도 하고, 간간히 찍는 극영화는 예전만 못하다는 혹평을 줄기차게 듣고 있지만, 빔 벤더스에게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8-90년대 명작들이 몇 편 있고, 이 영화는 그 대표작이다. 난 이 영화를 중학교 때 봤던 것 같은데, 도무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다시 보았다. 그 나이의 내가 보고 모든 걸 완전히 까먹은 것이 이해가 된다. 이 영화는 완전히 어른의 영화였다. 어른이 되어야 이해할 수 있는 트래비스의 고행. 순례라고 해야할까. 라이 쿠더의 음악과 너무 잘 어울리는 황량함. 그 시절 내가 보았던 수천의 영화들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지만, 많은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하나씩 봐야겠다.

골든 슬럼버, 노동석(2017) - 이 영화를 향한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은 오로지 단 하나의 이유.. 노동석 감독 때문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동석 감독은 김병석이라는 배우를 유일하게 영화에 출연시켰던 감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두 번째 장편을 끝으로 김병석은 더 이상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지만, 혹시라도 그 둘의 친분이 아직 이어지고 있다면 카메오나 단역으로나마 잠깐 김병석의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이 영화를.... 정말 화면을 너무도 열심히 뚫어질 듯 보았지만.... 끝내 김병석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고... 영화는 노동석이 첫번째 영화를 찍었던 2000년대 초반보다도 더 촌스러운 연결고리로 주인공을 묶고 있어서 정말 깜짝 놀랐다. 그래.. 그게 정말 충격이었지... 엄청나게 촌스러운 과거 회상씬.... 그들의 우정에 관한 묘사.... 그와중에 윤계상의 머리스타일은 자꾸만 눈에 밟히고... 그렇지... 윤계상은 장첸이 더 소중하니까 싶고... 이렇게 해놓고 감독은 네 번째 영화를 찍을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막 걱정이 되고... 네 번째 영화를 찍어봤자 김병석은 어차피 이제 안 나오겠지 싶고...

리브 바이 나이트, 벤 에플렉 (2016) - 데니스 루헤인의 원작에 대한 나의 애정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원작이 워낙 재밌으니까 영화로 옮겨졌을 때도 큰 줄거리 자체는 재미있지만, 책의 내용을 조금씩 여기저기 편집해 담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몇몇 신은 인상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크게 재미있다는 느낌을 못주고 종종 지루하다는 느낌까지 갖게 된다. 뭐 뻔한 말이지만, 원작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건 사실이고 그건 뭐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었으리라. 물론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빈틈없이 좋지만, 어떤 한 신의 엘르 패닝의 섬세한 연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감독으로서 벤 애플렉이 이 원작을 탐냈을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가 아니라 수많은 감독들이 탐냈을 거다. 그는 이미 같은 작가의 원작으로 좋은 평을 받은 적이 있으니 더욱 그랬을 거다. 그리고 배우로서도 이 역이 충분히 욕심났을 것이다. 아쉽게 썩 결과가 좋지 않았다. 엠마 굴드와의 재회 장면은 내가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것과 좀 많이 달라서 개인적으로 아쉬웠고, 조 샐다나가 맡았던 역은 원작에서는 내게 크게 존재감이 없었는데 영화에서는 꽤 많은 분량으로 등장해서 사실 좀 많이 지루했고, 영화를 평면적이고 전형적으로 만드는데 아주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하녀의 일기, 브루노 자코(2015) - 꾸준히 프랑스 영화는 봐줘야 하므로.. 레아 세두는 역시나 이 영화에서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진짜 현재 프랑스 배우 중에 가장 예쁜 거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하녀면서 주인을 깔보는 마인드와 눈빛, 너무 잘 어울린다. 그러나 영화 자체는 밋밋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끝나버린다. 브뉘엘도 같은 원작을 영화화한 적이 있는데, 그건 어떨지 궁금하다. 이렇게 아무 맛도 안나고 예쁘기만 한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을테니까.

여배우는 오늘도, 문소리(2017) - 처음 문소리의 실물을 봤던 날을 기억한다. 영화라는 매체나 잡지에서의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정말 훨씬 예뻐서 선명한 기억이 난다. 김태희처럼 화면 속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은 연예인은 차라리 실물을 보았을 때의 충격이 덜하다. 김태희는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미녀이니 실물로 보고 입이 떡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녀의 미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화면이 그녀의 실물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는 것뿐이다. 간혹 화면으로 보여주는 외모도 장난 아니지만 실물로 보면 카메라가 그 미모를 다 담지 못한다는 걸 알게되는 경우도 있다. 가령 강동원. 반면 문소리는 언제나 연기로 평가받는 배우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미인'이라거나 '미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십대때도 그랬는데 지금에 와서 그런 말을 쓸 리가 없다. 그러다가 태왕사신기라는 드라마를 찍으면서 그녀의 연기력에 대한 평가조차 갈리기 시작하고 그녀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나는 문소리를 정말 좋아하지만, 이것은 팩트다. 그녀의 필모를 다시 한 번 훑었다. 역시,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필모는 그저 그렇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잘나가는 감독들 혹은 실력있는 감독들의 작품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다. 유명한 감독이 아니어도 좋은 신인 감독의 영화도 있지만, 그녀의 최근작을 연출했던 감독들 중에는 없다. 이 영화의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그녀가 직접 얘기하는 배우의 매력에 관한 이야기는 그래서 뼈저리다. 인간이 가진 매력의 우선순위를 따질 수는 없다. 지성미가 백치미보다 딱히 낫지 않다는 얘기다. 모든 매력은 같은 선상에 있고, 저마다 다른 것뿐이다. 그래서 송혜교 나름의 매력이 있고, 문소리 나름의 매력이 있다. 굳이 문소리에게 나름 매력있다고 하지 않아도, 그녀는 분명 어떤 매력이 있다. 그녀에게 메릴 스트립을 갖다붙이며 위로할 필요가 없다. 메릴 스트립은 예쁘지 않은 얼굴이지만, 문소리는 사실 무지하게 예쁘다. 그러나 사실 문소리는 촌스러움을 갖고 있다. 나는 그래서 속상하다. 왜냐하면, 한국이 언제나 미적인 기준으로 추구하는 것은 세련됨이지 촌스러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촌스럽다는 말과 동양적인 외모라는 말은 다른 얘기다. 분명 촌스러움이라는 것은 인간의 외모를 평가할 때 거의 늘 항상 언제나 99.99999% 단점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외모가 중요한 연예인에게 촌스러움이라는 것이 입혀지면 그것은 일반인에게보다 더 크게 단점으로 부각된다. 그녀가 대학교 때 미녀 탑3 안에 들었다는 이야기에 허지웅이 '방송 임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였던 게 생각난다. 허지웅을 포함한 누군가의 눈에는 그녀의 아름다움보다 그녀의 촌스러움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고, 나는 그것이 그녀의 미모에 대한 평가가 낮은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2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서 합격한 영화의 배경이 몇년도인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녀는 그 시대 배경에 어울리는 얼굴을 가졌던 것이다. 이것은 그녀의 두상이나 광대, 구강구조 같은 것 때문이니까, 그걸 그녀가 후천적인 노력으로 변화시키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것을 포장하여 지성미라든가 우아미 고전미 등으로 부른다고 해도 언제나 알맹이는 그녀가 촌스럽게 생겼다는 변하지 않는 사실 뿐이다. 그녀는 지금 사십대이고, 그녀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의 폭은 점점 더 좁아질 것이다. 그것은 또래 모든 여배우들에게 공평하겠지만. 하지만 어느 시기가 지나고나면 그녀가 얼굴로 승부하던 배우가 아니라서 맡을 수 있는 역이 더 다양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의 윤여정처럼 될지도 모르겠다. 윤여정처럼 사는 전도연이나 김혜수를 상상하는 것보다 윤여정처럼 사는 문소리를 상상하는 게 훨씬 쉽다. 하지만 윤여정은 미인이 아닌데, 이런 전망이 문소리의 사기를 오히려 꺾는 이야기일까... 문소리가 정말 예쁘다는 건 사실인데. 이걸 강조하려다 너무 본인도 듣기 싫어할 이야기만 길게 썼다. 영화는 소소했다. 좀 서글픈 부분도 있었지만, 너무 처절하게 가지 않아서 보는 입장에서 덜 부담스러웠다. 거기 나오는 모든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암유발자같은데, 다들 연기를 잘해서 정말 쥐어패주고 싶었다. 친구라지만 위로인지 까는 건지 모르게 얘기하는 여자, 못배워처먹어가지고 무례하기가 이를 데 없는 전형적인 한남새키들, 문소리가 의식있고 진보적인 인간이라는 걸 악용해 저예산 영화에 무보수 출연을 압박하는 친한 영화인놈들, 배우로서의 이미지 따위 아랑곳 않고 자기 돈 덜 쓰려고 딸에게 협찬사진 따위를 종용하는 친엄마. 다들 진짜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그와중에 남편이 가장 귀여웠다. 역시. 나는 장준환 감독도 정말 좋아하고, 언제나 그의 행복과 성공을 바라왔는데, 1987이 성공했을 때 영화 관계자와 가족을 제외한다면 전국에서 내가 가장 진심으로 기뻐했을 것이다. 아가씨라든가, 리틀 포레스트처럼 영화에 크지 않은 비중으로 등장해 강한 존재감을 주는 식으로 그녀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런 방식의 반복으로 존재감을 소비해가지는 않았으면 한다. 다행인 것은 그녀는 똑똑하다는 거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그녀는 똑똑하고 예쁘니까 분명 계속 자기 방식으로 잘 해나갈 것이다.

나는 결백하다, 알프레드 히치콕(1955) - 이것은 사실 미스테리라거나, 스릴러라거나 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워낙에 캐리 그랜트와 그레이스 켈리를 싫어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좋아할 수 없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하면서 보면 나름 재미있게 볼 수 있고, 히치콕의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다른 영화에 비해 별다른 매력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늘 궁금한건데, 히치콕은 왜 캐리 그랜트랑 그렇게 많은 영화를 함께 찍었을까.....

그 곳에서만 빛난다, 오미보(2017) - 아야노 고가 나온 영화를 보고 싶기도 했고, 영화가 굉장히 우울하다고 해서 봤던 것 같은데 뭐 실제로 굉장히 우울하지는 않았고, 괜찮았다. 마지막에 뭔가 그런 식으로 일이 꼬여서 그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고, 그 원인이 되는 인물도 대충 예상했었지만... 그래도 좀 갑갑했다.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1959) - 나는 늘 고다르는 트뤼포와는 차원이 다르게 좋은 감독이라고, 그러니 그 둘을 한데 묶어서 이야기 하는 건 고다르에게 모욕적인 일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것은 그 동안 내가 봤던 고다르의 영화는 대부분 괜찮았고, 트뤼포의 영화는 늘 별로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았는데.... 왠지 트뤼포랑 같이 묶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싫었다 이 영화 진짜..... 허황된 대사들과 겉멋들린 인물들의 허세.... 정말 별로였다.

남한산성, 황동혁(2107) - 이 영화는 의외로 담백한 영화다. 꾸밈이 없고, 덤덤하며, 약간 무겁다. 하긴 원래 내용 자체가 한국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다룬 것이다 보니 무거울 수밖에 없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 떠밀리듯 그런 지경까지 이른 조선 조정 안의 두 입장을 꽤 공정하게 다뤄주었다. 결국 실제로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걸 학교 다닐 때 책으로 배웠지만, 막상 영화로 보니까 정말 너무 속상했다. 누구도 틀린 말이 아니고, 그저 국력이 너무 약해 진퇴양난에 빠진 것 뿐이니 왕이나 조정을 탓할 수 없다. 아마 영화에 가식이 없고, 정직해서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나보다.

2018년 6월.

from 생존의증명 2018.06.08 00:57

우묵배미의 사랑, 장선우(1990) - 90년대에는 이런 것들이 로맨틱하다고 여겨지던 거였을까. 남자는 한없이 폭력적이고, 여자는 끝내 순종적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이 정도로 굴면, 요즘 같으면 신고각인데 이걸 소개하는 곳마다 이것이 마치 소시민의 서글픈 연애스토리인 것처럼 써놨다. 장선우는 역시 이런 감독이었던 걸까. 박중훈도 이 시절이면 전성기였을텐데 연기 이 정도까지 못했던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해변의 폴린느, 에릭 로메르(1983) - 사랑에 온몸을 던지고 싶어하는 여자와, 그런 여자에게 끝없이 사랑을 고백하지만 끝없이 까이는 남자, 불사지를 준비가 된 여자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남자, 그리고 이 유치하고 멍청한 어른들의 각자 이기적인 감정놀이 속에서 그나마 제정신으로 끝까지 정신줄을 놓지 않는 폴린느라는 십대 소녀가 나오는 영화다. 이 영화가 크게 공감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여자 여럿을 꼬시는 능력있는 남자로 나오는 배우가 너무 무매력이기 때문이지. 보통 배우들은 과거가 더 후진 경우는 별로 없는데, 파스칼 그레고리는 과거에 정말 못봐주겠구나.... 그러니 그렇게 까이기만 하는 역으로 나올 수 밖에.... 폴린느 역의 소녀 배우는 너무도 매력적인데 그 후로 다시는 영화계에서 볼 수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

방랑자, 아녜스 바르다(1985) - 내가 보기에, 이 여자는 그저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더럽고 개념이 없는 인간이다. 자유라든가 방랑이라든가 이런 긍정적인 단어는 도무지 붙이고 싶지 않다. 영화가 시작할 때 한 젊은 여자가 길에서 얼어죽어 있고, 이 여자가 얼어죽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는 보여주는 건데, 일말의 동정심도 안 생긴다. 잘 죽었다 싶을 정도로. 그녀에게 선의로 베푸는 자들에게 고맙다는 말 한 번 없이 더 많은 걸 뻔뻔하게 요구하고, 충고하는 자들을 비난하며 소리를 지른다. 그녀가 지나 온 발자취마다 그녀에게 금전적 감정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만 쌓여갈 뿐이다. 이런 프랑스식 자유는 정말 진절머리난다.

육체의 문, 스즈키 세이준(1964) - 일본 영화 본 지가 오래되어서 하나 골라보았다. 스즈키 세이준 영화는 대개 괴팍하고 과장되고 화려하다. 이 영화도 여자 출연진 네 명에게 빨강, 노랑, 보라, 초록의 옷을, 심지어 속옷까지 그 색으로 맞춰 입혀서 좀 촌스러우면서도 웃기다. 2차 대전 후에 일본군에게 몸을 파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남자 하나가 우연히 그들과 섞여 살게 되면서 그들 사이에 미묘한 감정들과 계급이 생긴다. 결국 그 중 제일 예쁜 여자랑 눈이 맞게 되는데, 대가는 목숨이었다. 모르겠다. 딱히 이 영화를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네.

포제션, 안드레이 줄랍스키(1981) - 이 영화를 봤었는지 안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봤는데, 역시 봤던 영화였다. 그걸 끝까지 다 보고 나서 알았지.... 이자벨 아자니의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얼굴과 온몸을 불사지르는 연기투혼은 참 흥미롭다. 난 이상하게 이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도대체 어떤 부분이 내 마음에 드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기괴함의 끝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중간에 잠시 뜨악하기도 했지만 역시 결말을 보면서 내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1991) - 이 영화 역시 봤는지 안 봤는지 기억이 안나서 봤는데, 끝나고 나서도 봤었는지 안 봤었는지 모르겠다. 앞부분은 분명 기억에 있는데, 뒷 부분에 남자를 만나는 부분은 영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남자가 매력이 없어서일지도... 같은 얼굴을 가졌고, 혹은 하나로 연결되었을지도 모르는 두 여자에 대한 가정과 이야기는 매력적인데, 그게 낯선 남자와의 만남으로 잘 연결이 안된다. 두 소재를 어떤 식으로 묶어야 할지 모르겠다. 반쪽을 잃고 빈 반쪽을 다시 채운다는 건가. 모르겠다.

잔느 딜망, 샹탈 애커만(1975) - 이 영화가 대단하다는 건 알겠다. 그리고 아주 집요한 영화다. 세 시간 동안 여자는 요리를 하고, 장보고, 이불을 개고, 청소하고, 애를 보고, 설거지를 하고, 구두를 닦고, 몸을 판다. 대사도 거의 없다. 세 시간 동안 나는 그 여자의 꾸준하고 묵묵한 집안일들을 계속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완전히 그 여자의 심리에 동화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여자가 뭔가 틀어지기 시작할 때쯤 내 짜증도 슬슬 심해지고, 여자가 마지막에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이 집요한 리듬이 끝나는구나 싶어 안도감이 드는 것이다. 그래, 잘 만든 영화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너무 힘들었어... 화가 너무 많이 나...

드레스드 투 킬, 브라이언 드 팔마(1980) - 이게 벌써 40년 전 영화인데, 너무 재미있다. 스릴러 하면 빠질 수 없는 모든 장면들이 다 나오고, 마지막까지 엄청 쫄깃하다. 내용은 뭐 되게 특별한 게 있는 건 아니고 적절히 단촐하지만 장면장면이 너무 흥미롭다. 고전적인 환면 기법들도 종종 나오고 그래서 너무 즐거웠다. 브라이언 드 팔마 인생의 역작인 것 같다.

밤과 안개, 알랭 레네(1955) - 이 영화가 다큐인지도 몰랐고, 이런 내용인지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놀랐다. 대단히 담담하기도 하고 또 직설적이다. 그래서 보는 동안 견디기 힘든 장면들도 종종 있었고,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할지 조금 힘들기도 했다. 내가 살았던 시대도 아니고, 그 동안 너무 많은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늘 해오던 얘기들이었지만 이렇게 무방비상태로 훅 들어오니까 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동시대에 유대인이 아니라 다른 인종으로 살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곳에서 살았다면 나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을까. 내 양심과 내 분노가 버텨낼 수 있었을까. 가스실에 들어가기 위해 벌거벗겨진 채로 긴 줄을 서 있던 비쩍 마른 사람들이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살인의 낙인, 스즈키 세이준(1967) - 누구 때문이었을까. 내가 한때 스즈키 세이준에 집착했던 게. 기억나지 않지만 이제는 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 영화는 김기영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시대가 비슷한 걸 보면 이 시절 이런 취향을 가진 감독들 사이에서는 이런 식의 영화 기법이 유행이었던걸지도 모르겠다. 뚝뚝 끊기는 흐름과 과장된 액션들, 그로테스크한 장면들과 미장센. 보는 우리에겐 우스운 비장함. 아직 나에게 그의 영화가 몇 편이나 더 있는데 이걸 어째야 한담.

사베지 나이트, 시릴 콜라르(1992) - 어릴 때 어딘가에서 이 포스터를 보고 제목이랑 분위기에 되게 야한 영화일거라 생각해서 보고싶어했던 기억이 난다. 야한 영화는 아니고, 에이즈로 사망한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감독을 한 영화는 이것 한 편 뿐이고 몇 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영화가 너무 훌륭하다거나 그런 것은 분명 아니다. 꽤나 거칠고 약간 어수선한 느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아쉬움을 잠재울만한 엔딩씬이 있다. 그것은 그의 이야기를 영화로 남기겠다는, 끝까지 해내겠다는 감독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화면에 담겼기 때문이리라. 그 눈이 정말 인상적이다. 그러고 보니 로만느 보랑제는 한번도 사랑받는 역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녀는 늘 사랑을 갈구하고 집착하고 부르짖는 여자로 등장한다. 이제보니 왠지 짠해서 조금 슬펐다.

로렌스 애니웨이, 자비에 돌란(2012) - 전반부에 깔린 자의식 과잉의 대사들이 거슬려서 몇 번이나 포기했다가 이번에 끝까지 다보았다. 내가 다 기특하네. 끝나고 나서 생각은 그래도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이고, 겉멋이 들어 쉽게 만든(자비에 돌란의 영화는 그런 게 너무 많다.)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주제에 얽힌 사람은 총 네 명 정도라고 볼 수 있는데, 여주의 남편을 제외한 세 명의 감정선은 꽤 섬세한 편이다. 여기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유일한 한 장명은 여주가 파티장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그녀를 보는 설정인데(심지어 반한 것처럼), 도저히 여주의 외모를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이다. 자비에 돌란, 자기가 게이라고 여자 외모를 보는 감각을 완전히 잃은 건가.

그녀에 대해 알고있는 두세 가지 것들, 장 뤽 고다르(1967) - 재미가 없다. 모든 주인공이 사회와 현실과 자아와 언어와 이것저것에 대해서 똑똑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하고 있지만, 배우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그냥 대사를 외워 뱉는 것 같다. 모두가 장 뤽 고다르 선생님의 인형들처럼 움직인다. 그래. 저런 대사를 읊으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겠어. 난 그의 요즘 영화들이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원래 이런 감독이었던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 이마무라 쇼헤이(1979) -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는 뭔가 볼 때 서늘한 느낌이 든다. 냉정하게 그려낸 영화 너머 인간에 대한 감독의 애정같은 게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공허하고 차갑다. 그래서 가끔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의 인터뷰나 개인적인 자료는 한번도 찾아본 적이 없어서 실제로 어떤 인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간장 선생을 봐야할까...

클레어의 카메라, 홍상수(2017) - 음. 김민희는 여전히 예쁘고, 홍상수 영화에는 처음 등장한 장미희도 (아마 처음 겪어보는 스타일의 현장이었을텐데)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묻어가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뭔가 조금 덜 재미있었다. 이야기가 너무 단촐해서 그런가. 소품처럼 보인다. 한국인들과 호흡을 맞출 때는 꽤 안정적인 김민희의 연기는 이자벨 위페르와의 투샷에서는 그녀가 대사를 칠 때까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 기다리는 것 같이 불편해보여 보는 내가 좀 조마조마한 느낌이 든다. 그녀에게 세상에서 제일 에쁘다고 찬사를 보내는 건 뭐 상관없다. 이 영화를 감독 자신의 변명이라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홍상수 감독의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굳이 사생활과 끼워 맞춰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덜 재미있었던 건 사실이다.

이본느의 향기, 파트리스 르콩트(1994) - 한때 이 감독의 몇 작품을 아주 좋아했었는데, 오랜만에 이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 일단 대사가 쉬워서 알아듣기가 조금 편해서 좋았고. 여러 남자에게 사랑을 받는 여자가 내 눈에는 그다지 매력있지 않아서 좀..... 그랬다. 이 여자가 남자 인생 여럿 망칠만한 뭔가를 갖고 있어보이지는 않는데, 그래서인지 이 영화 뒤로는 별다른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않았다. 뭐 감독 스타일이었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뭐 여튼 영화는 대단히 탐미적으로 여자의 여기저기를 클로즈업으로 찍고있는데, 백인 여자들은 몸이 아주 하얗고 뭐 그런 이유 때문에 아시아 여자를 그런 식으로 찍을 때보다 훨씬 덜 야해보이는 것 같다. 아시아 여자를 그런 식으로 찍으면 너무 현실적인 살색 때문에 몰카처럼 혹은 관음증처럼 보일 것 같다. 뭐 여튼 이 감독 특유의 멜로 정서가 좋았는데, 그의 영화에서 남자는 늘 여자보다 조금 부족한 대신 순진하고 헌신적이고 모든 것을 건다. 감독이 왠지 본인을 쪼깨서 영화에 넣는 느낌이다. 그런데 요즘엔 나이가 들어서인지 멜로영화에는 관심을 잃으신 것 같다.